노을시간 자서전
영도의 새벽
박정자 어머니의 한 권
6개의 페이지로 엮은 한 권
서문
나는 이 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오래 생각했다. 손주들이 자라서 어느 새벽에 이 책을 펼친다면, 그 새벽에 나는 다시 살아 있을 것이다. 그래서 적어둔다. 잘 적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.
제 일 장
어머니의 손, 나의 손
어머니에게서 나에게로, 다시 자식들에게로 이어진 손길의 기록.
영도의 새벽
일곱 살 무렵, 우리 집은 부산 영도에 있었다. 바다가 가까운 동네였다. 새벽이면 어머니는 시장에서 사 오신 갈치를 부엌 도마 위에 올려두고 다듬으셨다. 톡, 톡, 일정한 도마 소리가 작은 집 안에 퍼졌다. 그 소리가 어린 나의 알람이었다. 지금도 새벽에 잠이 깰 때면, 그 부엌의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.
디딤돌

1955년 봄쯤이었을 것이다. 어머니와 내가 마당 디딤돌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. 어머니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. 그저 그 손이 따뜻했다는 것, 그리고 봄볕이 어머니의 자줏빛 치마에 가만히 어렸던 것만 또렷하다. 그날 사진 한 장이 남았다. 사진 속 나는 카메라를 똑바로 보고 있었지만, 마음은 어머니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다. 지금 그 사진을 다시 보면, 그게 보인다.
자식들의 가방
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봄이었다. 검정 가방이 너무 컸다. 어깨끈을 줄여도 가방이 무릎까지 내려왔다. 그래도 그 아이는 매일 아침 그 가방을 메고 골목 끝까지 뛰어갔다. 뒤도 돌아보지 않고. 나는 골목 입구에서 그 뒷모습을 한참 보았다. 가방은 점점 작아지고, 골목은 길어졌다. 셋째까지 모두 같은 골목을 지나갔다.
제 이 장
사람
만나고, 사랑하고, 떠나보낸 사람들에 대하여.
첫 만남
열아홉이었다. 그이를 처음 본 건 부둣가 옆 작은 다방이었다.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늦었고, 친구는 없었다. 다방 한구석에서 그이가 신문을 보고 있었다. 트럭 운전을 하던 사람이었다. 신문을 보는 손가락이 거칠고 검었다. 내가 어쩐 일로 그날 그 자리에 앉았는지 지금도 모른다. 그저 그 손가락을 한참 보았다.
혼자 남던 겨울
1976년 1월이었다. 그이가 떠난 그 겨울은 길었다. 막내가 다섯 살이었다. 밤에 아이들이 잠들면 부엌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. 울지도 못했다. 울면 아침에 일어날 힘이 없을 것 같았다. 겨울이 다 지나고 봄이 오던 어느 새벽, 부엌 창으로 햇빛이 들어왔다. 그 빛에 손을 가만히 대보았다. 그제야 울었다.
제 삼 장
오늘
지금의 하루, 작은 즐거움들에 대해.
지금 이 나이에
일흔다섯이다. 손주가 다섯이다.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화분을 본다. 잎이 새로 났는지, 물은 마르지 않았는지. 그 작은 일이 하루의 시작이다. 지난 일은 자주 떠오른다. 그러나 슬프지 않다. 다 지나간 자리에 햇빛이 들어와 있다.
후기
이 한 권이 누군가에게 닿는 날이 있다면, 그 사람도 자기 새벽의 풍경을 한 번 떠올렸으면 좋겠다. 잘 살았다, 못 살았다, 그런 말은 필요 없을 것 같다. 지나온 자리에 작은 빛이 든다는 것만 알면 된다.
특별히 빛나는 한 권은
제휴 서점과 함께 종이책 인쇄 출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
정식 출시 후 분기마다 우수작을 선정해 안내드릴 예정입니다.
위 〈영도의 새벽〉은 노을시간이 어떻게 한 권으로 엮이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만든 가상의 자서전입니다.
등장하는 인물·지명·연도는 모두 픽션입니다.